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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코로나 시대 수능 국어 공부, “이해될 때까지 읽어라”|심훈 대치동 국어 강사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20.07.23 14:15
조회수
9,132


대치동 대표?강사 심훈
독서량에 집착 말고 단문에 대한 정독 연습 필요
교과서 작품에 대한 객관적 이해 능력이 국어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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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읽기1, “연애를 안 하면 안 싸울까?”


A: 정지한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움직인다.
B: 정지한 물체에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A를 바탕으로 B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렇다.

A′: 연애를 하면 싸우게 된다.
B′: 연애를 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A′를 바탕으로 B′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연애하지 않아도 싸울 일은 많다.
돈 때문에 싸우고 주차 때문에 싸운다.

수능 국어에서 정오(OX) 판단을 물어보는 질문이다. ‘정지한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가속도가 생긴다’는 물리 공식에 대한 진술과 ‘연애를 하면 싸운다’는 사회 현상에 대한 진술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문장의 겉은 같아도 속은 다르다.
 

#문장 읽기2, “그는 그녀에 대한 미련이 있을까?”


“그녀에 대한 생각이 꿈처럼 희미하구나”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 미련이 없다면 그녀를 떠올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다만 그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그가 가진 미련이 그녀를 향해 당장 뛰어가고픈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후회 섞인 아쉬움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역시 수능 국어영역에서 출제된 문제를 단어만 바꾼 것이다.
 

“우리 애가 책을 많이 읽어서”


위의 사례를 통해 국가공인 국어 시험에서 요구하는 ‘독해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 교육현장에서 학부모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실제 시험과는 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애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국어를 잘할 거예요.”

“우리 애가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국어를 못하나 봐요.”

다른 말 같지만 같은 얘기다. 책을 ‘많이’ 읽어야 ‘국어’를 잘한다는 주장은 이제 상식이 된 듯하다. 과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위의 두 질문에 올바른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반대로 두 질문에 대해 그른 답을 내놓는다면 그것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일까.
 

국어 시험이 평가하는 독해력은 ‘정독의 능력’


시험에서 요구하는 ‘독해력’은 일차적으로 문장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을 의미한다. ‘정지한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가속도가 생긴다’는 진술과 ‘연애를 하면 싸움이 발생한다’는 진술의 함의를 구분하려면 고민과 학습이 필요하다. 게다가 국어 과목의 독서 지문은 학문적인 글이다. 실용적인 글이 아니다. 대학교 전공 교재 중 이른바 개론서나 입문서에 실려 있는 주제와 형식을 가진 지문들이다.

교수님들이 신입생들에게 전공 서적을 읽혀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학생들에게 ‘독서를 많이 하면 전공 서적도 잘 읽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그럴 것 같지 않다. 책을 펼쳐놓고 한 문장, 한 문장씩 그 의미를 설명할 것이다. 문장의 함의는 물론, 앞 문장과 뒷 문장의 논리적 관계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다가 중간에 학생들이 모를 만한 개념이 나오면 배경지식을 동원해 이해를 도울 것이다.

시험에서 요구하는 것은, 수백 페이지 분량의 책을 빠르게 대강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1500자 전후의 학술적인 지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국어 시험에 대비하려면 학술적인 글에 대한 정독 능력을 길러야 한다. 숲이 아니라 나무를 봐야 한다. 시험에 숲은 나오지도 않는다. 나무를 보기 위해서 잎사귀 하나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속독과 다독 연습이 아니라 정독 훈련이 필요하다.
 

문학, 무지한 확신이 무섭다.


문학 작품에 대한 단일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문학 감상의 능력을 5지 선다형 문제로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또한 누구나 안다.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평가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벼슬 생각이 꿈처럼 희미하구나”를 두고 미련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는 것은 좀 유치하다. 그러나 그게 시험이다. 결국 국어 시험을 앞둔 입장에서는 판단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 기준은 역시 ‘내’가 아니라 ‘남’이다. 보편성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겨울 바다’라는 시어에서 왜 ‘활기’나 ‘열정’이 아니라 ‘허무’를 떠올려야 하는지 묻는다면,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학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한 삶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독서라면 길잡이가 필요하다. 올바른 길잡이 없이 중년 부부의 삶을 다룬 소설에서 ‘이유 없이 남편이 미운 중년 여성의 마음’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 맘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보편성의 눈을 갖춰야 한다. 시험에 도움이 되는 국어 능력은 독서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대화량’이 중요하다. 선생님이나 부모님과의 대화가 어렵다면, 반드시 비평이나 해설서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 시대의 국어 공부, “이해될 때까지 읽어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수업 및 교습 등에 큰 차질이 생겼다.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의 고민이 깊다.

이 희대의 전염병 사태로 자습의 시간이 확보됐다면 이해될 때까지 읽어라. 수능에 출제된 지문들을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어보길 권한다. 문제는 지문의 이해도를 측정해 보는 수단이다. 어떤 문장을 바탕으로 어떤 문제를 내는지 패턴을 찾아보고 그 패턴도 숙지하자. 그리고 학습의 도구를 선정할 때부터 ‘상세한 해설’을 기준으로 삼고, 그 해설을 반드시 참고하자. 문장의 함의, 문장의 관계, 문단의 소주제, 문단의 관계가 분명하게 서술된 참고서를 선정해 ‘내 맘대로 독서’가 되지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하자. 의문점이 있다면 질문을 통해 해결하자. 그렇게 독해의 모델이 될 만한 자신만의 ‘인생 지문’을 쌓아가야 한다. 문학 작품은 특히 EBS와 교과서에 일부만 실린 작품은 반드시 전문을 읽어보자. 문학 작품 또한 비평(해설)을 반드시 참고하자. 작품의 연대와 작가의 성향까지 관심을 갖자. 세상에 같은 작품은 없지만 전혀 새로운 작품도 없다.
 

코로나 시대의 국어 시험, 교과서의 재발견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는 고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관동별곡’,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전우치전’ 등의 작품은 고1, 2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익히 배운 작품들이다.

‘신중하게 생각하여 명백하게 분별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묻는다.’

국어 능력을 묻는 시험의 근본 취지가 위와 같다면, 교과서 지문의 활용은 원칙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낯선 작품들에 대한 테스트는 순발력 테스트가 되기 십상이고, 시험 취지와 달리 자칫 박학(博學)에 대한 평가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었는지 드러난다. 올해 수능 국어는 수박 겉 핥기 식의 박학과 문제풀이 요령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험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어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이해될 때까지 읽어라”. 이해될 때까지 읽고 확인하여 이성과 감성을 단련하자. 코로나19로 인한 대면 학습 공백을 오히려 국어 능력을 기르는 기회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