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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디에도 없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만든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1.02 13:37
조회수
1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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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보는 일이 즐거웠어요. 학생들로서는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시기인 만큼 함께하는 동안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성취감과 보람도 컸어요. 아이들과 같이 일련의 리듬을 만들고 함께한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발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한국어를 이용해 언어가 가진 내용과 형식을 전달하는 일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천직이다, 생각했어요.”》
입시전쟁 20여 년 베테랑 국어교육자의 여유 
 

 한국사회에서 ‘전쟁터’라는 단어만큼 입시환경을 비유하기에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시험에서의 승리가 생존에서의 승리인 수험생들에게 입시는 거대한 전쟁이고 매회의 모의고사는 전투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얼마 전 끝난 6월 모의평가(이하 모평)는 전쟁으로 치면 노르망디 전투에 비견될 만하다. 남은 기간의 전황을 가늠할 만한 중요한 평가. 그러나 국어과목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교육과정 설계에 따른 변화였으나 예고된 적 없는 일이었고, 그 앞에서 학생들은 당황했다. 당황한 것은 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당혹감을 느껴야 했던 것은 지도교사, 담당과목 교사, 메이저 학원의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다수가 남은 기간의 적응을 놓고 걱정하고 있을 때도 김봉소 고문은 달랐다.

?파란의 6월 모평이 끝나고 열린 강의 자리. 김 고문은 오랜 시간 국어학습 지도와 교육에 몰두해온 전문가답게, 학생들을 여유롭게 다독이고 문제와 지문의 특성을 분석해 파악해야 할 요점을 짚어주었다. 학생들은 시험의 긴장을 떨치고 웃으면서 김 고문의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융합과 장문독해는 2014교육과정 설계의 중요한 핵심이었어요. 그에 따른 변화가 이제야 평가에 반영이 된 거죠. 2000자 분량의 지문은 처음 등장했지만 전체적으로 지문의 개수가 늘어난 건 아닙니다. 집중력을 유지하고 시간을 안배하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문제예요. 학생들로서는 달라진 형식이라는 새로운 해결과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니니까요. 침착하게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 나가면 됩니다.”

실제로 교육과정 설계에 따른 교과서 집필, 그리고 그에 따른 시험과 평가라는 수순을 밟아오면서 수능시험은 수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때마다 당황한 학생들을 격려해 제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또한 김 고문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단 1년을 함께할 뿐인 학생들을 굳이 ‘제자들’이라 부르고, 그들의 질문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챙겨 수업에 반영해온 사람. 그가 자신을 스타 강사보다는 전문 국어교육자라 자임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도, 과시적 허세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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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을 통해 발견한 재능… 천직이 된 교육의 길

거의 평생을 전문 교육자로서 살아온 그지만, 처음부터 학생들을 향했던 것은 아니다. 유명 강사로 이름을 높이기 전, 그는 방송국 구성작가와 시나리오 창작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예기치 않은 후배의 추천으로 학원에 몸을 담았다. 학원 강사로서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없던 그에게 머지않아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을 보는 일이 즐거웠어요. 학생들로서는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시기인 만큼 함께하는 동안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성취감과 보람도 컸어요. 아이들과 같이 일련의 리듬을 만들고 함께한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발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한국어를 이용해 언어가 가진 내용과 형식을 전달하는 일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천직이다, 생각했어요.” 

특정한 언어적 표현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총동원한 뒤 학생들이 마침내 문제를 납득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보람을 느꼈다. 더불어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성적 향상이라는 지표를 지상목표로 삼기는 했지만, 천차만별이던 학생들이 일정 기간 노력한 끝에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모국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원천적 가능성’이 국어교육에 있다고 믿게 됐다.  

그의 믿음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흔히 입시 쪽에 종사한다고 하면 시험 위주로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방법만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학원가에 투신한 1995년은 마침 수능제도가 시행된 두 번째 해. 달달 외우는 국어지식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언어능력을 시험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초기였다. 모두가 함께 방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는 그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즐겼다.

“수능시험이 언어교육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평가도 교육의 일부거든요. 평가를 통해 성취를 가늠하고 그 과정에서 교양을 습득할 수도 있어요. 특히 수능시험은 그동안 교육담당자들이 끊임없이 진화를 시켜 왔죠. 다양한 지문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지식을 이해하고 바로바로 소화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기술적인 처리로 해결 가능한 문제도 아니에요. 수능은 다중을 상대로 한 시험인 동시에 전체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기계적·기술적으로 요령만 익힌다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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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콘텐츠에 대한 갈증으로 연구소를 설립하다

20년이 넘도록 학생들의 수험생활을 함께해 오면서 시험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온 그에게도 넘어야 할 벽은 많았다. 문자정보를 접하고 이를 소화하는 방식은 급속하게 바뀌었고, 2005년 이후 시험의 형태가 안정화되어 가면서 그가 소화해야 할 정보의 양도 덩달아 늘어갔다. 특히 융합을 중심에 둔 교육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그는 과학, 예술, 철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쌓아야 했다. 학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불통지(無不通知)’에 이르러야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수능시험이라는 체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했다.  

국어교육의 시작은 한국어 문장으로 된 좋은 콘텐츠를 보는 것부터라고 믿었으므로, 좋은 문제·좋은 지문·좋은 교재에 대한 그의 갈증은 해가 갈수록 짙어졌다. 평가원에서 만드는 양질의 콘텐츠가 있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1년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만한 수준의 콘텐츠를 혼자서 만드는 것 또한 역부족이었다.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학생들에게 미안함마저 느꼈다.

“2012년에 이감국어교육연구소를 설립했어요. 설립 전에 한 1년 정도 준비기간을 가졌는데 그때 한 일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하고 필요한 인력을 구성하고 체계를 갖추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습게 보는 분도 많았어요. 일개 개인이 뭔데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죠. 가진 것에 비하면 꿈이 너무 거창했던 거니까. 할 수 있는 건 설득밖에 없었어요. 일본어나 영어에는 교육의 기본이 되는 다양화된 콘텐츠가 갖춰져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았죠.”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60621/78769685/1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ㅣ입력 2016-06-21 03:00:00 ㅣ수정 2016-06-21 03:00:00